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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천 紀行/奇行
    일기 2024. 8. 10. 09:00

    기행¹ (奇行)

    「명사」
    기이한 행동.

    • 그가 기인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의 기행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기행² (紀行)

    「명사」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

    • 제주도 기행.
    • 역사 탐방 기행.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단어 공부는 항상 예문과 함께.


    작성을 마치고...

    글을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쓰다 보니 생각이 나지 않을 때쯤 완성하게 되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벌써 4주가 되었다.
    글을 생각나는 대로 쓰면서 모든 걸 담으려다 보니 과도하게 길어졌다. 사진 250장 이상에, 글자수는 알고 싶지도 않다.

    한편 그 압도적인 정보량을 바탕으로 모든 걸 담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사실, 이제 당시에 대한 원본 기억이 거의 남지 않아 판단하기 힘들다.)

    내가 훌륭한 포토그래퍼는 아니지만, 적기에 셔터를 눌러서 그때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게 담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한 손으론 우산을 들고 힘들게 찍은 수백 장의 사진들이 아니었다면 4주 끌면서 글 못 썼다.

    길이는 과하고 사진에 담긴 느낌도 나만 받을 수 있다면, 이 글은 독자를 고려하지 않은 정말 나쁜 글이지만, 독자가 과연 누구일까? 나에게 대단한 관심을 가진 자가 아닌 이상 여행 시작하기도 전에 뒤로가기를 누를 것임을 안다. 결국 가장 유력한 독자는 미래의 나임을 생각하면, 그냥 내 맘대로 두서없이 쓴 것이 잘한 짓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천 흠뻑쇼 에디션; 페이지 페이지마다 얼룩이 가득하고 불어 터지려 한다.


    7월 8~9일, 홀로 충청북도 제천시에 다녀왔다.

    준비

    평소에 홍대병 힙스터 기질이 풍부한 나는, 대학생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방학을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활동, 그러나 보편적이지는 않은 활동을 떠올려 보았다. 재미있는 활동을 먼저 생각하자니 하나 같이 의미가 없길래, 의미가 있는 활동을 먼저 생각해보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작년에 공부를 할 적 선생님들이 이때를 위해 해주셨던 수많은 조언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결과적으로 가장 적합했던 두 가지는, 김 선생님의 관광이 아닌 '여행'을 떠나라는 말씀과 심 선생님이 매주 몇 권씩 남겨주신 추천 도서 목록이었다.

    추천 도서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눈에 띄었다. 이 순간부터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지적 허영심이 다소 낀 여행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지적 허영심을 원동력으로 해서라도 문화유산이 왜 문화유산인지 이해하게 된다면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있다. (
    이동진: 그런데 저는 문화에서는 허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에요.)
    문화유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니 시리즈가 참 많은데, 힙스터스러우면서도 너무 멀지 않을 것 같은 남한강을 다룬 편을 골라서 사봤다. 학교 교보문고에는 재고도 없어서 바로드림으로 주문해서 일주일 뒤에 받았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나 싶었지만, 책을 구하는 수고까지 한 이상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역시 퇴로 차단이 행동의 가장 큰 동기가 되는 것 같다.

     
    책에는 영월, 원주, 제천, 단양, 충주 등 수많은 지역이 등장했는데, 나는 대충 지도를 보고 붙어있는 제천, 단양, 충주를 2박 3일 정도로 다녀와야겠다는 계획을 대강 세워뒀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스스로가 뚜벅이임을 망각하고 있었다. 책을 집필하신 교수님이 상식적으로 시내버스를 타거나 오래 걸어서 돌아다니시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가려고 했던 주요 지점들을 지도에서 구체적으로 찍어보니, 버스가 하루에 한 번 운행해서 하루 안에 갔다가 돌아올 수 없는 곳이나 버스를 타도 2시간 이상 걸어야 하는 곳이 많았다. 물론 그래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밤새 걷거나, 노숙이라도 할 각오는 되어있었지만, 출발하기 전부터 노숙해야지! 하는 건 아무래도 미친 짓이니 계획을 많이 축소하고 수정했다.
     
    그리하여 출발 3일 전, 충주와 단양을 제외한 제천에서만 1박 2일을 보내기로 했다. 뭐 거창한 계획을 짰다고 착각할 수 있는데, 한 것이라곤 숙소 예약, 기차표 예매뿐이었다. 제천행 KTX를 타는 순간까지도 내가 확실히 가야겠다고 생각한 곳은 시내에 있는 단 두 군데였고, 기차에서 1시간 내내 책과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견적을 재며 외곽에 있는 두 곳 정도에도 간신히 가볼 수는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오전 8시 13분에 제천역에 도착하여, 폭우주의보 발령 안내와 춘식이 우산과 함께 여행이 시작되었다.

    계획이 없어서 덜 설레는 기분으로 찍은 상봉역
    그래도 비가 적당히 왔던 8일 아침의 제천역


    시작

    밥도 안 먹고 아침 일찍 왔으니 아침을 먹어야 할 텐데, 역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는 보령식당이라는 곳이 있길래 들어가 봤다. 메뉴는 단 세 개였고, 별생각 없이 칼국수를 시켜서 먹었다. 허름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는 동안 사람들이 꽤 많이 들어왔는데, 아는 사람들은 아는 로컬식당인가 보다.. 했다. 맛집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사진만 봐도 김이 눅눅하고 한데 굳이 길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배는 든든하게 채웠으니 그러려니 했다.

    보령식당의 칼국수. 천식이 그리워지는 맛

    아침을 먹은 후에는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을 보기 위해 장락사로 향했다. 걸어갔다. 하루에 두세 대 다니는 버스가 없진 않았을 텐데, 기후동행카드의 영역에서 벗어난 만큼 한 시간 정도는 걷는 게 경제적인 것 같기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 제천이란 곳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3.6km, 5556걸음

    장락사까지 걸어가면서, 사진 찍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이곳은 적어도 내가 다녀본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종잡을 수 없는 특이한 감성을 내뿜고 있었다. 왜 이런 느낌을 받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도시로부터 신구(新舊)의 조화와 부조화, 통일감과 괴리감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기묘한 감각을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한다. 도시에 혼재하는 성질 중 가장 표현하기 쉬운 것이 신구인 것이지, 꼭 그게 아니더라도 형용하기 어려운 부분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그 모든 느낌이 모여 도시를 형성하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감성이 제천만의 특징인지, 아니면 다른 도시들도 비슷하게 지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매우 궁금한 부분이다.
    1시간 동안 25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으니 2~3분에 한 장꼴로 찍은 셈이다.
     

    가로등, 샹들리에 등으로 가득한 조명 가게; 돌아다니다 보니 이런 조명 가게가 은근 많았다
    은하철도 999제는 무슨 뜻이며, 거대 신발에 미니 장구에... 난 모르겠다. / 불상, 두꺼비 등이 진열된 상패 가게 영업중(영업안함)
    도로변에 조성된 꽃밭조차도 어색하고 새로워 보였다 / 이런 게 길거리 꽃밭에 놓여 있다니
    세계주류전문점, 성인용품, 타투...
    낡아 보이는 웨딩홀과 촐싹대는 간판의 PC방 / 만능의원 / 교회에 붙어있는 꽤 큰 텃밭
    열려있기만 했다면 나도 모르게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를 분위기의 불교문화원 (박찬호?)
    JIMFF: 제천국제음악영화제 / 신식 건물 예술의전당, 그리고 쓰러져가는 주유소와 부동산
    의외로 외제차 비율은 서울 못지않았고 주위 건물이 얼마나 노후하였든 편의점은 항상 깔끔했다
    빨강머리앤은 기독교였구나... 교회 목사님네 부부와 친하다고 한다
    멀리서 봐도 상당한 퀄리티의 벽화
    자연치유도시 제천 (5초 후) 꽃 아래 비에 젖은 피자박스 발견
    소파가 놓인 버스 정류장; 서울엔 왜 이런 게 없을까?
    슬슬 시외라는 것을 알려주는 건물; 타이어 가게나 카센터도 엄청 많았다
    도로변에 호박꽃 / 아마 남한강으로 흘러 들어갈 천 / 밭 넓이가 굉장하다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그렇게 장락사에 도착했다. 하염없이 걷다가 먼 거리에 우뚝 솟은 무언가가 보여서 그때부터 지도를 끄고 갔는데, 탑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단 컸다.

    장락사일이 무슨 뜻인가 했는데 일(一)이 아니라 화살표였다

    모전석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만들어, 전탑(벽돌 탑)의 형식으로 쌓은 탑을 말한다. 보물로 지정된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은 이름 그대로 7층의 모전석탑인 것이다.

     

    01234

    사진으로는 그 감동이 잘 담기지 않는데, 빗속에서 홀로 우뚝 솟아있는 탑을 마주하는 것은 퍽 깊은 울림을 준다. 천 년 전 사람들이 어떻게 돌 깎아서 이런 탑을 세웠을지, 이 탑은 어떻게 천 년 넘게 서 있는 것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탑의 배경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냥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돌의 색감도 마음에 들었고, 탑 위에도 풀이 한 포기씩 자라 있는 것이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다.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절인 것 같고, 옛날 장락사 건물들의 터도 보존되어있다

    의도하지는 않았던 상황 하나를 여행 내내 경험했는데, 바로 내가 혼자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동행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넘어서, 어딜 가든 그냥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 내가 특별히 가기로 정했던 장소들에서는, 내 마음 가는 대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아무도 없었다. 사실 조금 우려했던 부분은, 내가 혼자 여행을 택한 것은 뭐든지 충분히, 여유롭게 즐기고 싶기 때문인데, 다른 여행객이 많으면 생각에 잠긴답시고 자리를 오래 점유하거나 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고, 나는 버스 시간표 외의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이틀간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워낙 장소 선정이 힙스터스럽기도 하고, 평일인 데다가 비까지 많이 오니 사람이 없을 수밖에 없나 싶었다. 비를 원망하다가도 이 사실을 깨닫고는 비가 내리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배론성지

    버스 시간표를 보면서 고심하다가, 점심을 일단 거르고 시간 맞춰 버스를 타고 배론성지에 방문하기로 했다.
     

    도보가 1.8km, 2.7km로 만만하지는 않다

    이때부터 하늘이 무너진 듯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양말이 젖은 느낌을 싫어해서 일부러 방수가 되는 신발을 신고 왔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깊은 웅덩이만 피하면서 다녔다. 바람도 세게 불어서, 짧은 거리를 걷는 데도 걸음마다 버거웠다. 가다가 보이는 편의점이 그렇게 반가운 적이 없었다.
     
    네이버에는 버스 실시간 정보가 안 뜨는데, 그래도 정류장에는 아래 사진처럼 떠서 불안을 덜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 다니는 차를 놓치는 건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라서 인생의 좋은 경험으로서라도 딱히 경험하고 싶진 않았다.

    450번을 타야 했는데, 저 버스는 첫차가 곧 막차이다 / 빼곡한 버스 시간표

    버스는 다행히도 잘 탔는데, 배론성지에 도달하려면 배론입구라는 곳에서 내려 2.7km를 더 걸어야 했다. 비는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인도는 없었다. 길 왼쪽에 붙어서 가면 차에 치일 일은 없겠지만, 여기저기 피할 수 없는 웅덩이가 있는 것이 문제였다. 양말이 너무 젖어서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양말을 벗고 걷기 시작했다. 이 선택은 지금까지도 2024년 7월 최악의 선택으로 (나에게) 평가받고 있고, 왼발이 여기저기 까진 것을 명백히 느낄 수 있을 때쯤 나는 멈추고 다시 새 양말을 신었다... 엄지발가락 쪽 상처는 좀 커서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배론성지까지 3분의 1 지점쯤에 왔을 때, 내가 가는 방향으로 지나가던 차에서 한 아주머니가 3분의 2 지점쯤에 있는 마을회관까지 갈 건데 태워주길 원하냐고 물어보셨다. 매우 갈등했으나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고, 꼴이 말이 아닌지라 어렵게 거절하고 다시 뚜벅뚜벅 걸었다. 가는 길은 고됐지만, 탐험을 하는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따져보면 탐험을 한 것이 맞긴 하다.

     

    0123
    산봉우리마다 안개가 서려 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놓쳤을 풍경
    가톨릭의 영역에 도달한 것 같아 반가워서
    허수아비의 본분을 다하는 진짜 허수아비는 처음 본다. 까마귀가 많긴 하더라
    옥수수, 코스모스, 벼
    별생각 없이 걸어왔는데, 저 안내문들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진지한 성지(聖地)였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배론성지에 도착하였다.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온 만큼 자연스레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게 되었다. 꽃이 피는 계절에는 (사진으로 담지 못한) 연못이 볼 만할 것 같았다.
     

    01234

    배론은 조선 시대에 박해당하던 천주교인들이 숨어 살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황사영은 신유박해 때 배론의 토굴에 숨어 살았는데, 천주교가 박해당하는 작금의 상황과 관련하여 백서를 작성하여 청나라에 보내려다 적발되어 처형되었다. 그 백서의 내용이 참 충격적인데, 청나라와 서양 국가들에 조선에 대한 무력시위 내지는 침략을 하여 조선이 천주교를 받아들이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천주교라서 처형당한 것이 아니라, 외환을 유치하려고 했으니 당연하게 처형된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 내에서도 황사영을 좋게 봐주지만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천주교 신자가 아니기도 하고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모르기에 옳다 그르다 평가는 못 내렸지만, 종교라는 것이 도대체 뭐길래 황사영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황사영 백서의 내용을 보면 황사영은 진정으로 조선을 위하는 마음에 제안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종교가 국가를 버릴 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어떤 힘을 가진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되었다. 여행 전주에 재개봉하여 관람한 영화 《듄: 파트 2》는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 )가 종교 지도자로 각성하고, 주변인들이 맹목적인 추종자로 변하는 모습을 그린다. 이 광신도들이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를 현실의 종교와 견주어 봤는데, 황사영 토굴에서는 한발짝 더 나아가 고민해볼 수 있었다.

    토굴 안에서 故 신경림 시인의 시, 〈다시 남한강 상류에 와서〉를 꺼내 읽어봤다.
     
          다시 남한강 상류에 와서       신경림
           
          헐벗은 가로수에 옹기전에 전봇줄에
          잔비가 부리고 바람이 매달려 울고
          나는 진종일 여관집 툇마루에 나와
          잿빛으로 바랜 먼 산을 보고 섰다
          배론당은 여기서도 삼십리라 한다
          궃은 날 여울목에서 여자 울음 들리는
          강 따라 후미진 바윗길을 돌라 한다
          목 잘린 교우들의 이름 들을 적마다
          사기가마 굳은 벽에 머리 박고 울었을
          황사영을 생각하면 나는 두려워진다
          나라란 무엇인가 나라란 무엇인가고
          친구들의 목숨 무엇보다 값진 것
          질척이는 장바닥에 탱자나무 울타리에
          누룩재비 참새떼 몰려 웃고 까불어도
          불과 칼로 친구들 구하려다
          몸 토막토막 찢기고 잘리고 씹힌
          그 사람 생각하면 나는 무서워진다
          번개가 아우성치고 천둥이 울부짖을 때
          추자도 제주도 백령도로 쫓기며
          그 아내 원통해 차마 혀 못 깨물 때
          누가 그더러 반역자라 하는가
          나라란 무엇인가 나라란 무엇인가고
          헐벗은 가로수에 옹기전에 전봇줄에
          잔비가 뿌리고 바람이 매달려 우는
          다시 남한강 상류 궁벽진 강촌에 와서
          그 아내를 생각하면 나는 두려워진다
          내 친구를 생각하면 나는 무서워진다
     
    시인은 유신 시절 학생, 문인, 기자들까지 마구 잡혀가자 누가 빨리 와서 박정희를 쫓아낼 수는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사영처럼 생각하게 될까 봐 무서워진다고 한 것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남한강편, 293면)
     
    비를 피할 겸, 거미줄을 걷어내고 토굴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황사영은 어떤 심정으로 1만 3천 자의 백서를 써 내려갔을지, 신경림 시인은 어떤 심정으로 이 시를 쓴 것일지, 내가 그걸 헤아릴 길이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

    토굴 내부와 안에서 바라본 바깥. 매우 비좁다.
    순교자 황사영의 동상 / 저 멀리 조각상이 하나 보이는 들판
    뜻밖의 경험

    위 사진에 보이는 구조물은 의외로 미로이다. 무교임에도 글을 읽고서 공감하고 느끼는 바가 컸다. 모든 인생여정에는 생략하지 않을 만한 가치가 있고, 생략되지 않은 여정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아마도 더 나아졌을) 미래의 나를 구성하게 될 것 같다. 그렇기에 서두를 필요 없이 그저 묵묵히 견뎌낸다면 때가 올 것이다... 요런 느낌? 결국은 나도 이런 신앙 아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바닥에 그려진 것이 미로임을 알고, 붉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반쯤 오니 지루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고는 속으로 미로를 매우 칭찬했다. 미로의 의도가 이것이었을 테니, 마음을 다잡고 다시 천천히 걷는데, 비슷한 지루함을 느낀 과거의 기억도 떠오르고, 미래에도 언젠가는 이런 지루함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군대라던지..) 과거의 지루한 여정이 현재의 나에게서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따져보니, 지루한 여정이라도 내가 잘만 보낸다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어느새 나는 미로의 끝, 원의 중심에 다다라 있었다.
     

    근처 카페의 매실에이드


    제천 시내로 복귀

    시내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내렸던 버스 정류장까지 다시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나가는 SUV에서 한 아저씨가 내게 외치셨다.

    타!

     
    ..예? 이번에는 왠지 모르게 거역할 수 없었고 어느새 나는 SUV 조수석에 타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냐, 어디로 가냐, 어디 사냐, 대학생이냐, 어느 대학 다니냐, 원래 성당 다니냐, 제천에는 왜 왔냐 등 질문 폭탄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날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았다. 제천 잘 둘러보고 역 근처에 약초 파는 곳에도 구경 가보라고 하셨다. 아저씨는 내가 배론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도 된다고 했는데도 어차피 가는 길이라며 봉양역까지 태워다 주셨다. 감사 인사는 정말 많이 했다. 정말 감사했기 때문에...
     
    감사한 건 감사한 거고, 봉양역 버스 시간표는 내가 숙지하지 못해서 위험요인이 있긴 했다. 봉양역에 내린 것이 14시 42분경이었고, 시간표에 따르면 46분에 시내로 가는 버스가 와서, 운도 참 좋다고 생각했었다. 15분 후, 이 버스는 안 온다는 걸 받아들이고 15시 20분에 오는 다음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길 건너편에 있는 찐빵 가게를 무시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이때 모듬찐빵을 골랐어야 했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먹으려고 했는데, 갓 찐 찐빵이라 너무 뜨거워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15시 20분에도 버스는 오지 않아서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5분쯤에 버스가 한 대 와서 무작정 올라타고서 알아보니, 16시를 넘어서 오기로 예정된 버스였다. 
    아... 이곳은 길도 안 막히고 정차도 sparse table을 써야 할 만한 빈도로 하기에, 출발점에서 멀어질수록 예정 시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만일 운행 버스 종류가 적은 배론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렸다면 영문도 모른 채 몇 시간을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아저씨께 더욱더 감사해졌다.

    겨우겨우 탄 버스 안에서 어디에 갈지 고민하다가 의림지에 가기로 했다.

     

    내려서 의림지까지 도보 1.9km


    의림지

    잠시 비가 그친 제천의 하늘

    버스에서 내리고도 의림지까지는 꽤 걸어야 했다. 그래도 비가 잦아들었고, 발에 난 상처가 따갑다는 것만 빼면 걷는 것이 익숙해져서 힘들지는 않았다. 아무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서 아까 산 야채찐빵을 마저 먹었는데, 지나가는 버스 기사님마다 정류장에 사람이 있으니 정차했다가 불쌍하게 쳐다보고 가셨다...

     
    의림지는 매우 오래된 저수지로, 물을 끌어다가 농사를 지었다는 증거가 되기에 문명 발달의 척도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폰 높이 들고 폭포 찍을 때 좀 쫄았다
    좌 / 중 / 우

    저수지라니, 별거 없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로도 별거 없다. 물 주위로 산책로가 있고, 소나무가 여럿 서 있고, 누각, 정자 몇 개가 놓여있다. 근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참 신기했다. 정자에 올라서 창을 통해 한참 동안 물을 보고 있었다. 수백 수천 개의 낙하하는 빗방울이 생성하는 물결파의 간섭을 쳐다보고 있었다.

     

    10분 동안 보고 있던 것 요약

    안쪽에는 아주 작은 섬이 하나 있다

    슬슬 힘들고, 배고프고, 시간상 다른 곳에 들르기는 힘든 상황이라 저녁이나 먹고 숙소에 들어가려 했다. 걸어오는 길에 본 추어탕집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고민 없이 찾아갔다. 그 무엇도 계획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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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처에서 찍은 이것저것: 놀이공원 앞 인생네컷 부스, 오리와 오리배, 구면좌표계, 불법 낚시꾼, 바닥바라기, 스크린 승마...

    들어가자마자 추어탕 하나 드릴까요? 하셔서 네~ 하고 추어탕을 먹었다. 사실 나는 추어튀김을 좋아하는데, 추어탕이 11000원이고 튀김이 12000원이라 양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고 혼자 온 사람이 시키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들깻가루 잔뜩 넣어서 먹으니까 뜨끈하고 맛있었다~

     

    펄펄 끓는 추어탕


    1일차 마무리

    버스 실시간 정보 안내기 고장

    추어탕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찍은 영상이다. 내 얄팍한 경험으로 파악하기를, 저건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을 때 나타나는 커서 움직임 같아 보였다. 괜히 중요해 보이는 거 드래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스크린 너머로 응원하는 영혼을 열심히 보내드렸다.
     
    숙소는 그냥 잠만 잘 만한 상태였다. 최저가 1인실로 고른지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 기대에 부응했다. 불길하게도 화장실 창문이 열려있길래 화장실 벽을 보니 모기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어쩔 수 없이 화장실을 봉인하기로 했다. 잠자는 공간에 침입한 파리는 책을 던져 뭉갰다. 너어어무 지쳐서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를 뜯어서 먹고, 온종일 제대로 못 본 폰이나 좀 보다가 잤다.

     

    최애 과자 콘칲, 옆에는 소주가 있었어야 할 분위기인데 제로 아이스티다


    부실한 계획에 따르면 시간상 여유가 없진 않아서, 늦잠을 만끽했다. 화장실 문을 열기가 싫어서 버티다가 시간을 많이 보냈고, 11시를 넘겨서 늦게늦게 체크아웃했다.

    제천약초시장

    걸어갈 만한 1.3km

    어제 차 태워주신 아저씨 픽 방문지이다. 시간을 오래 보낼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으나, 잠시 구경해보러 갔다. 전국 약초 생산 물량의 80%를 취급한다고 한다. (제천약초시장)
    비도 여전히 꽤 내리고 있었고, 평일 오전이라 방문객은 전혀 없었다. 점포마다 주인 분들이 앉아계셨는데, 내가 아무래도 약초를 살 것 같이 생기진 않았다 보니 한자리에서 오래 구경하기엔 눈치가 많이 보였다. 그래서 빠르게 돌아다니면서 신기한 건 재빨리 사진으로 남기고 나왔다. 황기라는 약재는 매 가게마다 n년근이라면서 있길래 확실히 기억에 남았는데, 찾아보니 굉장한 범용성을 가진 약재라고 한다. 천장에는 주머니가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는데, 주머니에 약재 이름이 적혀있는 걸 보면 약재를 담아서 걸어놓는 듯했다.
    사방에 약초만 가득한 것이 상당히 신선한 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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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km

    위치가 괜찮은 돈까스집이 있어서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지도에 보이는 종합운동장도 왠지 한번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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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운동장과 올림픽 스포츠센터

     

    게이트볼장
    19세기 말 제천에서 의병이 일어났다고 한다 / 평화의 소녀상
    별거 아닌데 특별해 보여서 별걸 다 찍어버린 / 무궁화가 아니라 접시꽃
    오른쪽 짤을 인상 깊게 보신 건지 이름까지 우리의원; 정상진료(아님)

    돈까스집에서 돈까스가 아닌 치킨까스나 생선까스를 단독메뉴로 시키기는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일까? 선택에 곤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모듬까스 메뉴가 있길래 냉큼 주문했다.

     

    단?돈 만이천 원

    돈까스 2종류, 치킨까스, 생선까스, 새우까스까지 아주 골고루 나와서 맛나게 먹었다. 특히 치킨까스, 생선까스가 제일 만족스러웠는데, 최근에 먹은 생선까스라곤 천식에 나오는 것뿐이니 그럴 만도 하다.


    청풍문화재단지

    꼬불꼬불 22km. 절대 걸어서는 못 돌아간다.

    여러모로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열악한 교통에도 여긴 꼭 가고 싶은 마음에 하루를 완전히 비워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종일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니라서 걱정이 있었는데, 약초시장 찍었다가 가려니까 뭔가 잘 들어맞았다. 역시나 첫차이자 막차인 버스를 시간 딱 맞춰 타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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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에서 졸다가 깨서 막 찍었는데 유리창 물방울 때문에 품질은 별로, 실제로는 엄청 멋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사마귀와... 지명피의자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된 지역에 있던 다양한 문화재를 미리 옮겨 조성한 문화재단지이다. 기존과 똑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문화재 사이 위치 관계 등을 고려해서 배치했다고 한다.

    입장료는 3천 원
    먹는 즐거움 9배 이벤트 ㄷㄷ
    청풍면에 있던 여러 고가(古家)
    그냥 돌탑 / 제천 물태리 석조 여래 입상(보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
    금남루: '도호부절제아문'이라고 적혀있다. 예전에는 청풍초등학교의 교문으로 쓰였다고 한다
    금병헌: 의견이 반영된 것인지 포박된 백성 마네킹은 없어졌다
    소방 시설마저도 개성 있는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한벽루를 예상보다는 빨리 마주쳤다. 교수님이 책에서 한벽루만으로도 청풍에 와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씀하셔서 기대를 좀 했다. 확실히 때깔이 다른 것 같긴 했다. 명칭을 잘 몰라서 구체적인 설명이 어려운데, 모든 무늬가 하나하나 섬세하면서 화려하고, 기둥 끝마다 달린 봉황(?)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사람도 없어서, 모든 각도에서 쳐다보고, 처마 밑에서 올려다도 보고, 밑에도 들어가 보고 충분히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벽루: 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복원판)이 걸려있다. 올라가 볼 수는 없었다
    멀리 보이는 것은 충주호(청풍호) / 물을 왜 뿌리는 걸까?

    다시 청풍문화재단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망월산성과 망월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상 등산이라서 20분은 걸린 것 같다
    망월산성으로 가는 길에 있던 작은 정자, 계단은 안 막혀있었으나 무서워서 패스했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소망탑, 장수하는 바위, S라인 벚나무 등등 나름 웃긴 소소한 볼거리였다
    변함없는 사랑나무... 나무도 짝이 있는데

    계단과 오르막길을 열심히 오르다 보니 망월산성에 도달했다. 처음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곳이고, 경치도 좋아서 사람이 많았다면 주요 포토존이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 말고는 그 누구도 없었기에 나는 경치를 독점할 수 있었다. 특이사항으로는 깃발이 많이 해져있었다.

    망월산성 위에서 내려다본 청풍대교

    드디어 가장 높은 곳, 망월루까지 왔다. 망월루가 유명하다기보다는, 등산을 할 때 정상을 찍는 느낌으로 간 것 같다. 서울에서 제천까지, 제천 중에서도 청풍면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을 수 없다는 느낌. 아무튼 왔다.

    망월루

    비가 와서 더럽혀진 신발을 열심히 털고, 망월루에 올라갔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니 넓게 펼쳐진 청풍호가 보이고, 동시에 작년에 공부하면서 본 시조와 가사들이 머릿속에서 촤라라락 지나갔다. 아... 이래서 옛날 사람들이 풍경을 보면서 그렇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했구나. 바로 이해가 됐다. 누구든지 이 광경을 보고 느낀 감정들을 어떻게든 기록하고 싶을 것 같았다. 나도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자연이 등장하는 고전시가는,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만 알고 싶다느니, 나만 알기는 아깝다느니 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만든 하늘에 감사하고, 임금께서 나를 이런 아름다운 곳에 유배 보내주시다니 럭키비키, 뭐 거의 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관동별곡 같은 작품을 감상하며 어렴풋이 그렸던 심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관동별곡의 배경은 아니지만.. 정말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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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월루 위에서 내려다 본 청풍호반 / 여행 내내 안개 서린 산봉우리를 많이 봤다
    망월루 아래에 너무 열심히들 쌓아놓으셔서 가만히 냅뒀다
    청풍명월: 바람이 푸르고 달이 밝다, 비에 적힌 분들은 잘은 모르지만 다들 꽤 유명하다고 한다
    수몰된 지역에 살던 주민들의 문화를 기록해둔 곳인데, 내부 사진을 못 찍었다 / 호랑이 잡는 아저씨
    근처에 있는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탔으면 보였을 풍경
    팔영루 겸 입구 / 입구 근처 장승

    나와서는 버스가 언제 올지 몰라서 멀뚱멀뚱 있다가, 문득 배경으로 많이 봤던 청풍대교가 걸어서 건너보고 싶어졌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나 싶다가도, 이걸 참는 게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

     

    제정신의 소유자는 대개 청풍대교를 걸어서 건너지 않기 때문에, 길이 굉장히 험했다. 인도에 커다란 나뭇가지가 널브러져 있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정비가 안 된 느낌이었다. 의외로 다리를 건너면서 가장 큰 불만은 거미줄이었다. 길을 가다가 거미줄에 걸려본 사람은 그 묘하게 기분 나쁜 느낌을 알 텐데, 체감상 세 걸음마다 한 번씩 거미줄에 걸렸다. 가슴 높이에서도 종종 걸리고, 특히 정강이에서 자주 걸려서 나중에는 발을 무릎 높이까지 들면서 거미줄을 밟겠다는 느낌으로 걸어 다녔다.

    나 다음으로 청풍대교를 건널 사람은 거미줄에 덜 걸릴 것이고, 터전을 잃은 거미는 더 튼튼한 집을 새로 지을 것이다. 아마도...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털어내느라 참 피곤했는데, 그래도 건너면서 경치는 좋았다~...

     

    인도는 한쪽뿐이고, 주황색 봉은 쓰러져 있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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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풍대교에서 올려다본 망월루가 인상 깊다
    난간 아래 이슬 맺힌 거미줄

    청풍대교를 걸어서 왕복하니 버스가 올 거라는 기대를 걸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정말 운 좋게도 5분 안에 버스가 와서 딱 타고 시내로 돌아왔다. 이제야 버스에 대해 깨달은 사실이, 거의 정차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소요 시간도 지도 앱 피셜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었다. 버스로 68분 걸린다고 한 길인데, 실제로는 28분 정도 걸렸다. 이 정도면 그냥 좀 크고 저렴한 택시가 아닐까?

    방지턱 앞에서 거의 정차를 하시는 스윗한 기사님 / 왜 찍었지?


    마무리

    저녁은 그냥 땡기는 걸 먹으려고 해서 진지하게 맘스터치에 가는 것도 고려했다. 그래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부대찌개 집을 찾아 들어갔다. 치즈 부대찌개와 베이컨 부대찌개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도대체 왜?) 베이컨 부대찌개를 골랐는데, 베이컨 부대찌개에도 치즈가 한 장 있었다.
    밥을 천천히 먹으니 식당에 한 시간 가까이 있었는데, 그동안 손님이 단 한 명도 안 왔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왤까

     

    baked beans는 저 밑에 깔려있었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떠서, 다시 한번 땡기는 대로 좀 멀리 있는 크리스피크림을 향해 걸어갔다. 크리스피크림만의 단맛이 필요할 때가 가끔 있다.

     

    가는 길에 있던 명동 고기로? 고깃집이 많은가보다

    가는 길에 지도에서 '제천문화의거리'라는 것을 발견해서 참지 못하고 새 버렸다. 잠깐 둘러보고 가던 길 가려고 했는데, 거리가 아예 반대 방향으로 나있는 바람에... 크리스피크림은 가기 힘들어졌다.
    적당히 늦은 저녁 시간이기도 하고, 유명 프랜차이즈 가게도 몰려있어서 그런지 처음으로 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젊은 층 수요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지, 점포 구성이 근처 중앙시장 이용객들에 더 맞춰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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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의거리

    크리스피크림에 안 간 대신, 유명해 보이는 로컬 빵집에 가서 집에 가져갈 만한 빵을 사놓고 쉬었다. 찾아보니 전국에 제과 기능장은 천 명 좀 넘게 있다고 한다.

    초코파이는 우리가 아는 情초코파이보다는 마시멜로가 굳다. 특색 있고 맛있었는데, 집에서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먹으니 과하게 굳어져서 가루가 떨어지고 좀 별로였다.

    바닐라 라떼, 미니 초코파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귀여운 옥수수 옆 진짜 옥수수 / 여행의 시작과 끝을 밝혀준 조명 가게

    빵집에서 충분히 여유를 부렸는데도 시간이 30분 넘게 남아서 진짜 마지막으로 역에 가서 기다렸다. 역무원분들은 밤늦게까지 여러 방면으로 힘드실 것 같았다...

    힐링시티 인정
    인쇄물이 아니라 양각으로 새긴 제대로 된 작품이던데, 이런 게 왜 화장실 벽에 걸려있는지 알 수 없다
    걷고 걷고 또 걸었던 2일의 마무리


    그렇게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12시를 넘겨서 겨우 집에 들어갔다. 거미줄 때문에 즉시 씻고, 피곤한데도 여운이 가시질 않아 엄청 늦게 잤다.


    평가

    객관적으로 여행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음에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 혼자라서 힘들었던 점도 당연히 없지 않고, 이틀 동안 비가 오지 않은 시간이 몇 시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비 안 온 것처럼 싸돌아 다니면서 내 맘대로 볼 거 다 보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 그럼 된 거 아닐까?

    몸은 확실히 지쳤지만 마음은 풀충전되었다. 글을 쓰는 지금, 살짝은 아쉬운 마음에 남은 방학 동안 한 군데 또 다녀오려는 궁리 중이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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